"비례대표제 확대에 동참할 젊은이 어디 없을까?"


다 지난 이야기지만, 작년 한 해는 말 그대로 ‘정치의 해’였다. 연 초부터 시작해서 4월 총선을 지나 12월 대선까지 사람들은 각자의 정치적 희망을 마구 내뿜으며 살았다. 희망은 자유니까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매우 눈에 띄는 분들이 계셨다. ‘자유’와 ‘민주’라는 현대사회의 소중한 가치 앞에 숭고한 신앙의 언어인 ‘기독’까지 덧붙여 삼위일체를 이룬 바로 그 분들. 바로 기독자유민주당이었다. 자신들을 찍어주면 교회의 은행이자를 2%로 내려주겠다는데 은행에 빚진 죄인으로서 어찌 그 달콤한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기독자유민주당 말고 한국기독당도 있었다. 기독자유민주당과 한국기독당은 선거 막판에 범 기독진영의 대통합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여담이지만 불교연합당도 있었다.)


그런데 해프닝으로 그칠 것 같던 이 분들이 예상외의 선전을 했다. 기독자유민주당이 19대 총선에서 얻은 정당득표율은 1.2%로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 소속된 원내정당이던 창조한국당(0.4%)보다 높고 진보신당(1.13%)은 물론 언론에 종종 주목을 받던 녹색당(0.48%), 청년당(0.34%)보다도 높은 득표율을 얻은 것이다. 거기다 한국기독당(0.25%)까지 합치면 범 기독진영의 정당득표율은 무려 1.45%에 육박한다. 물론 그 분들의 성에 찰리는 없었다. 기독자유민주당 핵심인사들은 선거 당일, 모 신문사가 입주한 빌딩 와인바에서 개표결과를 보며 자축하려다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라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는 후문이다. 왜 그랬을까? 그 어르신들의 믿음이 부족했던 탓일까? 그럴 리 없다. 그 분들이 어떤 분들인데. 문제는 바로 제도 탓이다. 자, 이제부터 이 ‘황면서생’이 제갈공명에 필적할만한 비책을 내놓을 터이니 누가 좀 크로스로 들어와서 보라고 알려줬으면.


기독당과 같은 소수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거대양당에게 유리한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 이건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니까 더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곧바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밝히겠다. 바로 비례대표제가 확대되는 길 밖에는 없다. (목사님! 박사님! 이제 아시겠죠?) 우리나라도 현재 전체 300개 의석 중 54석을 비례대표로 뽑고 있는데 이는 전체 의석의 18% 정도로 맛 배기 수준이다. 비례대표제의 비율을 최소 5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미 수많은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아마 제일 유명한 것이 ‘독일식’ 비례대표제일 것이다. 독일 제품이 튼튼하고 좋은 것은 다 안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후보에 한 표, 정당에 한 표를 투표한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하는 것과 똑같다. 국회 의석은 정당투표율에 따라 배분되는데 단 이때 어느 정도 문턱조항을 두어 군소정당이 마구 난립하는 것을 막는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5%이상 득표 또는 지역구 당선자가 3명 이상인 정당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다. 배분된 의석 수 대로 지역구 당선자부터 우선 등원시키고 다음에 비례대표 순서에 따라 등원한다. 만약 정당 배분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경우 지역구 당선자 모두를 등원시킨다. 따라서 국회의원 정수가 고정적이지 않고 탄력적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다.


1. 20개 선거구가 있는 (갑)지역이 있다고 하자. 이곳은 A당의 강세지역으로 20석 모두를 A당이 갖고 갔다.


2. 그러나 정당투표에서 A당 54%,  B당 35%,  C당 10%,  D당이 1%를 얻어 비교적 고르게 분포됐다.


3. D당은 정당투표에서 5% 이상 지지를 얻거나 3명 이상의 지역구 당선자를 내지 못했으므로 문턱조항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 받지 못했다.


4.D당이 득표한 1%를 A, B, C당의 득표율에 맞게 다시 분배하니 A당 55%, B당 35%, C당 10%가 되었다.


5. 이에 따라 20석을 배분하면 A당  11석, B당 7석, C당은 2석을 배분 받는다.


6. 그런데  A당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된 11석 보다 훨씬 많은 20명의 지역구 당선자를 내게 되었다. 이 경우 지역구 당선자 20명 모두를 등원시킨다.


7. 결국 이 지역 선거구는 20석이었으나 최종 당선자는 29명이 된다. 이런 지역이 여러 곳 있으므로  국회의원 정수가 당초보다 늘어난다.


만약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게 되면 실상 기독당 어르신들 같은 정치인이 아니라 유권자인 국민이 유리하게 된다. 우선 나의 소중한 한 표가 찍어도 소용없는 표, 즉 사표(死票)가 될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다. 지금처럼 A당이 되는 것이 싫어서 B당을 찍을 필요가 없다. C당을 지지해서 찍으면 C당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의 여론을 공정하게 반영할 수 있다. 51.6%에는 밀렸지만 48%의 의견도 정당하게 정치자원을 배분받는다.


아울러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가 거의 완벽하게 사라진다. 전국에서 모아진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데 특정지역의 편만 드는 건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들은 자연히 인기 위주가 아닌 정책선거를 펴게 되고 지역에 매몰되지 않은 참신한 인재들이 정치권에 진입하기 쉬워진다.


비례대표제가 확대되면 안 된다는 주장들이 있다.


첫째, 군소정당이 난립해 정국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한다. 아니다. 지금처럼 영화 같은 상황을 끊이지 않고 연출하는 거대정당들이 그 따위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문턱조항에 따라 득표율이 미미한 정당들을 제외하고 유력한 몇 개의 정당이 서로 정치력을 발휘하여 연립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의 역동성이 나타날 수 있다.


둘째, 비리가 많아진다면서 18대 총선 때 창조한국당이나 19대 총선 때 통합진보당 사례를 드는데, 이것 역시 아니다! 이것도 거대정당들이 할 소리가 아니다. 니들은 얼마나 깨끗하다고.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나쁜 사람들의 비정상적인 운영 방식과 태도에 있다.


셋째, 지역대표성이 낮아지고 정당 간부들만 득세하게 된다. 아니다. 막말로 지역대표성은 도의원, 시의원, 구의원들에게 주고 국회의원 쯤 되면 국가비전을 보고 일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위에서 예를 들며 설명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같은 제도는 그런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모두 갖춘 훌륭한 제도다.


만약 비례대표제가 확대되고 큰 목사님들이 시원하게 베팅 한 번 하시면, 어쩌면 기독당 어르신들 중에서 국회의원이 되시는 분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우려스러운 상황이겠지만 나는 괜찮다고 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역시도 국민의 선택한 결과니까. 그리고 소수지만 아주 훌륭한 정치세력들이 그네들보다 훨씬 많이 의회에 진출해 열심히 정화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공정한 세상을 위해 비례대표제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이 <비례대표제포럼>이란 이름으로 모여 벌써 행사를 진행한 것이 4회째, 최근 모임의 부제가 “청년, 새 민주주의에 새 희망을 품다!”였다. 이 얼마나 현상의 역설을 반영한 것이고 쥐어짜서라도 희망을 찾아보겠다는 눈물겨운 모습이란 말인가! 한 청년이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여전히 정치에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포럼의 고문을 맡고 있는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의 윤여준 원장. 평생 정치영역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기능과 역할은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기능과 역할은 여전하며,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도 오게 하라는 절대자의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신앙인이라면 결코 그것을 멸시하거나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오히려 정치는 그 명령을 실현시킬 수 있는 숭고한 도구인 것이다. 기독교가 사회에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는 이 때, 세상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비례대표제 확대에 동참할 젊은이가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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