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분노하면 가능성을 연다


지난 성금요일을 보내며 나름 격정적인 글을 실었다. 고난주간에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초청된 강사가 며칠에 걸쳐 복 받는 것을 강조하고 헌금을 부추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을 직접 목격한 후 분노에 차서 밤잠을 설치며 쓴 글이었다.


다시 한 번 부활을 고백하고, 삶은 달걀을 많이 먹었지만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사이 그 교회는 새로운 헌금을 만들어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 강사는 전국은 물론이고 해외까지 넘다 들며 복 받는 법을 설파하고 있었다. 무언가 해야만 했다. 동네시장에서 청년들과 떡볶이를 먹다가 포크를 내려놓으며(실은 다 먹었기 때문에) 결심했다. “그래, 진짜 복이 무엇인지 한번 가려보자!”


한국 개신교가 어쩌다가 이렇게 저급하게 복을 구걸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크로스로에 '한국교회 흑역사'를 연재하는 손승호 전 교회협 간사를 섭외하기로 했다. '동네교회청년'의 단골강사(?)이기도 한 그는, 늘 그렇듯 무심한 척하며 섭외에 응해주었다.


성서에서는 '복'을 무엇이라 말하는지 궁금했다. 여러 곳에 추천을 받았는데 하나같이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김근주 연구위원을 꼽았다. 와주시기만 한다면! 행사의 취지를 담아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고 얼마 후 아주 짧은 답장이 돌아왔다. “좋습니다. 격려를 보냅니다.” 알고 보니 동네이웃이었다.


이번 행사의 이름을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흉내 내어 <복福이란 무엇인가>로 정했다. 웹자보는 평소 눈여겨보았던 뱅크시의 작품을 빌려 만들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양손에 쇼핑백이 주렁주렁 달린 그림이었다. 저작권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을 마음껏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있었다. 홍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공짜로 신 나게 했다. 행사에는 약 20여 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그들 중에는 사람들로부터 '집사님'이라 불리는 청년들도 있었다.


"한국 개신교와 기복신앙"이란 주제로 강의한 손승호 간사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사람들의 불안이 극심해졌고 그들을 대상으로 개신교 일부가 복을 강조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람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위로는 얻었고 개신교 일부는 이를 통해 교세를 확장하게 되었으며 결국 개신교 대부분이 그런 태도를 답습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서가 말하는 복"이란 주제로 강의한 김근주 연구위원은 우리가 흔히 '복'의 대표주자로 떠올리는 아브라함이 사실 공평과 정의의 삶을 위해 하나님께 부름 받았다고 했다. 시편 73편을 풀어 설명하며 악인의 형통이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아삽의 깨달음을 전한 뒤 우리가 구해야 할 진짜 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의 의지로는 절대 누릴 수 없으니 기도하라고, 특히 부모와 교사는 자녀와 학생이 그런 삶을 살도록 기도하라고 했다.


강의 후에는 강사와 참석자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여기에 왜 오게 되었고 오늘 모임이 어땠는지 이야기하는, 일명 '속풀이 대화'를 나누었다. 귀 기울여 들으면서 이들을 여기로 불러 모은 힘은 각자가 나름대로 느낀 '분노'가 아닐까 생각했다. 문득 고난주간에 그 말도 안 되는 집회를 목격하며 분노로 치를 떨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바꿔 말하면 어떨까. 혼자서 분노하면 속만 상하지만 여럿이 함께 분노하면 가능성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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