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선교와 동네 선교


‘동네에 교회가 있다고 해서 동네가 행복한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동네를 사심 없이 섬겨보겠노라고 시작한 <동네교회청년>이 1년을 훌쩍 넘었다. 그간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앞일을 모색할 필요를 느낀다.


때마침, 선교학을 공부하는 형, 손승진 씨가 학업을 위해 출국하는 것을 기념하여 지난여름에 열었던 ‘예수님의 선교와 동네 선교’라는 제목의 조촐한 강연이 생각났다. 이 글은 손승진 형의 강연을 듣고 생각한 바를 쓴 것임을 밝힌다. 그럼 이제 시작!


요즘을 흔히 ‘글로벌 시대’라고 한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예수님도 글로벌 시대를 사셨다. 로마 제국의 패권 아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는 곳이었고, 성전이 자리 잡은 예루살렘은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예수님은 재개발 시대를 사셨다. 성서에서 악인 중의 악인으로 묘사되는 헤로데는 재건축 붐을 일으켜 도시와 요새를 건설하고 수도시설을 정비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죽고 못 사는 성전을 재건한 것도 그였다. 괜히 ‘대왕’이란 호칭이 붙은 게 아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요, 목수였던 요셉은 재건축 붐을 좇아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것으로 추측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글로벌 시대, 재개발 시대를 살면서, 철저하게 ‘동네’를 중심으로 선교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간혹 큰 도시들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예수님의 선교는 변두리 지역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집중되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누가복음 4장 18~19절, 공동번역)


예수님이 선교에 나서면서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동네 회당에 들어가 이사야 예언자의 글귀를 낭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딱 한 마디를 덧붙임으로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분명하게 밝혔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관심은 가난한 사람, 묶인 사람, 눈먼 사람, 억눌린 사람에게 있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해방을 알려주고, 보게 하고,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겠다고 했다. 평생에 걸친 죽음의 위협은 이렇게 시작됐다. 가족들은 듬직했던 장남의 변심을 안타까워했다. 몇몇 동네에서는 내쫓김을 당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 못지않게 글로벌 시대, 재개발 시대를 살고 있다. 동네에서 외국인을 마주치는 것은 이제 별로 감격스럽지 않다. 커다란 쇼핑몰에 들려 장을 보고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은 매우 익숙한 행위가 되었다. 작은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던 산 중턱은 커다란 아파트 단지로 변한 지 꽤 됐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선교하겠다고 한다면 그 무대는 두말할 것 없이 ‘동네’가 되어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곳을 찾으면서 동네는 소홀하게 여기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동네에 살면서, 동네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동네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우리의 선교를 통해 행복해져야 할 사람들은 분명하다. 동네의 가난한 사람, 묶인 사람, 눈먼 사람, 억눌린 사람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발견해야 한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해방을 알려주고, 다시 볼 수 있게 해주고,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일부 사람들, 예를 들어 권력자들이나 종교인들과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괜히 시비할 것은 없지만, 예수님처럼만 한다면 필연일지 모른다. 이 세상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이랴. 가족들은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고, 몇몇 동네 사람들은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우리는 사망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을 무릅쓰고 우리가 ‘동네선교’를 감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은 우리가 먼저 복음을 알게 되고, 해방되고, 다시 보게 되고,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따라 살아보라고 권하시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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