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일에 집중하여라"


새해가 되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일이 종종 생긴다. 인사와 함께 몇 마디 나누고 나면 금방 어색해져서 재빨리 다음 대화거리를 생각해야 한다. 옳거니! 으레 나오는 질문은 무슨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일한다고 하면 상대방은 머뭇거리다 다시 물어본다.

 

“그러면 생활은 어떻게 하십니까?”


어떻게 생활하긴. 인간사 거기서 거긴 것처럼 나도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살아가는 노동자다. 물론 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덜 받겠지만, 그래도 내가 일하는 곳은 생긴 지 오래되었고 꾸준하고 든든하게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월급 한 번 밀린 적 없고, 나와 부모님 이렇게 세 식구가 목구멍에 풀칠하기에 딱 좋다!


그런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골룸이 스미골 미혹하듯’이란 속담처럼,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우뚝우뚝 솟아오른다. 그것은 상대적 모자람에 대한 절대적 공포다. TV를 틀면 ‘신입생 여러분의 성적이 낮은 이유는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노트북이 없기 때문’이라거나,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식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세상이다.


아, 말씀으로 극복해야지! 아닌 게 아니라 성도들에게 새해 들어 ‘약속의 말씀’을 뽑도록 하는 교회들이 많다. 성도들은 자신이 뽑은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책상에 붙여놓거나 다이어리에 잘 간직한다. 그리고 한 해를 살면서 힘든 일이 있거나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다시금 꺼내 보며 그 의미를 생각한다. 나무랄 수 없는 순수한 마음이다.


그런데 킁킁, 냄새가 난다. 성서의 수많은 말씀 중에서 몇십 또는 몇백 개의 아름다운 말씀을 추려주신 분은 과연 누구실까? 따지고 보면 그도 나와 같은 노동자가 아닌가! 이름 모를 그분의 노력을 생각하니 킁킁대던 코끝이 찡해진다. 내가 말씀을 하나 더 뽑으면, 그분의 수고가 하나 더 늘어날까 염려되어, 나는 차마 말씀을 뽑지 않았다.


대신 <메시지 성경>을 읽다가 눈과 마음에 들어온 말씀이 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이렇게 적혀 있다.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하고 계신 일에 온전히 집중하여라. 내일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로 동요하지 마라.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닥쳐도 막상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이다.”


나는 올 한 해, 이 말씀이 그냥 믿고 싶어졌다.


새해가 밝았다. 해가 떴다가 지고 바람이 불고 마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들은 예로부터 그것들에 숫자를 갖다 붙이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번에는 2012가 2013으로, 12와 31은 각각 1과 1로 바뀌었다. 변화는 기대를 일으킨다. 회사의 부정과 불의, 그리고 그것들로 인한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철탑으로 올라가신 분들에게, 숫자들의 변화가 단지 철탑 위 생활이 더 늘어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자비로우신 여러분,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 해도 말씀으로 기운 받아 열심히 활동하는 동네교회청년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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