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피켓팅을 했습니다. 첫 번째 피켓팅 소식 보기(클릭) 응암동 불광천에는 벚꽃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지난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오늘 피켓팅에는 <동네교회청년> 친구들이 사정이 있어 많이 못왔는데요. 다행히 <동네교회청년>을 처음 시작할 때 함께 했던 황재민 씨가 와서 동참해주었습니다.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했습니다. 지나가던 분들이 음료수를 두 개나 주었습니다. 한 어르신은 손을 흔들고 가주셨고요. 한 어린이는 저희 피켓을 보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세월호 유가족 편!"이라고 외치며 지나갔습니다. 저희를 아는 친구도 지나가다가 잠깐 찾아와 어깨를 두드려주고 갔습니다.



한 어르신은 저희에게 "보상금을 몇 억이나 받았다는데 왜 그러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유가족들은 돈을 요구하지도, 받지도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아직 풀리지 않은 점들이 많으니 진상을 밝혀달라는 것인데, 정부가 자꾸 돈 이야기부터 꺼내서 더 속상해하고 있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 그럼 내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하고 지나가셨습니다. 핑턴포스트코리아 : 거액 보상금? 세월호 유족들이 거리에 나선 이유(클릭)


저희들의 작은 행동이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동네주민들께서 불쾌한 마음 없이 세월호 유가족 입장을 헤아리게 되는 계기가 되도록... 마음으로 빌어주세요!



불광천 피켓팅 마무리합니다.

관심 갖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 4월 18일(토)에는 오후 3시, 시청광장에서 열리는 "4.18 세월호참사 1년 범국민대회 및 청와대 인간띠잇기"에 참여합니다. 4.18 범국민대회(클릭)


2. 4월 25일(토)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기독인모임, 약칭 세기모>에서 주최하는 팽목항기도회에 참여합니다. ☞팽목항 기도회(클릭)


동네교회청년은 2014년 3월 29일(토), 랄랄라(은평구 신사동)에서 "우리동네, 숨은할일찾기"라는 주제로 발표회를 진행했습니다. 동네교회청년이 동네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발표하고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의견을 올해 실천해보기로 한 것인데요.

각각의 발표를 동영상으로 공유합니다. ^^


1. 전봇대를 지켜줘

 
2. 장애인에게 편한 것이 모두에게 편한 것이다


3. 청년, 동네시장으로 가다


4. 모으고, 쓰고, 알리고


5. 아저씨들이 놀아줄게


6. 한 아이가 자라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의견은 무엇일까요? (두구 두구 두구 ㅋㅋㅋㅋㅋ)




전봇대를 지켜줘~!!!

 

동네교회청년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봇대를, 우리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예쁘고 의미 있게 바꿔가겠습니다. 그 많은 것을 다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우선 한 개부터 바꿔보겠다는 마음으로 실천에 옮겨보겠습니다.

관심 갖고, 도와주세요! ^^



동네교회청년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6월 1일(일) 오후 8시, 응암동 커피산책에서 
우리동네 후보자를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iMovie로 만든 27초짜리 짧은 영상을 공유합니다 ^^ 




동네교회청년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동네 후보자를 검증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누구를 뽑아야 할 지 이야기 해봅시다.

그리고 6월 4일, 꼭 투표합시다!


*일시_ 2014년 6월 1일(일) 오후 8시
*장소_ 은평구 어딘가 (5월 31일 토요일 연락)
*준비물_ 선거공보물, 개인 음료비
*문의_ 공일공.이칠팔사.팔사일팔(정희)
*문의_ 공일공.팔구육사.구삼육공(제민) 
'동네를 위한 기도'는
<동네교회청년>의 기도모임입니다.

우리 동네와 옆 동네를 위해,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2014년 5월 11일(일)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세요.

 

1.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증산, 수색 일대에 뉴타운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붉은 깃발을 내걸고 있습니다. 은평구만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것을 다 없애버리고 아파트를 지으려고 합니다. 아파트가 생기더라도 원래 이 곳에 살던 주민들은 다 살 수는 없습니다. 누구를 위한 재개발, 누구를 위한 뉴타운인가요? 투기꾼들을 위한 재개발이 멈춰지도록, 원주민들을 위한 주거재생이 이뤄지도록 기도합니다.

• [은평시민신문] 붉은 깃발로 뒤덮인 증산 뉴타운

© 은평시민신문



2. 아, 세월호!

결코 잊지 않기! 정치꾼들에게 이용되지 않기!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진짜 회개하기! 
우리 스스로 진짜 새정치 하기!


 

3. 어쩌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재개발 문제도, 세월호 참사도, 결국 이 모든 악의 근원은 '돈'입니다. 가난한 나라의 상점에 음식이 있지만 돈이라는 종이 쪼가리가 없어서 사람이 굶어 죽습니다. 어쩌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을까요? 진정, 돈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기도합니다.

맘몬, 콜랭 드 플랑시의 지옥 사전


 

4.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얼마 전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 갔다가 다리 위에서 투신 하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다행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습니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브라질자살예방협회(ww.cvv.org.br) 홍보 포스터

 
 

*  *  *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마태복음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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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신청 하기
※ 발표신청은 마감되었습니다 ^^

# 갖고 오기로 하신 음식들 

피자, 임실치즈& 요쿠르트, 초콜릿, 김밥, 부침개 ...
(2014년 3월 22일 수요일 자정 현재) 



# 은평민중의집 '랄랄라' 안내
 
서울시 은평구 신사1동 26-5번지 예동빌딩 1층

'동네를 위한 기도'는
 
<동네교회청년>의 기도모임입니다.

우리 동네와 옆 동네를 위해,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2014년 2월 9일(일)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세요. 



동네의 약자들과 우리들을 진정 해방시켜 주세요
하나님께서 동네에 살고 있는 약자들을 도와주시고, 우리에게도 그 분들을 도울 일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동네교회청년>은 우리 동네의 약자가 누군지 알고 싶고, 그 분들을 도움으로써 해방시키고,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이 해방되길 원합니다. 

 

지방선거(1) 진심으로 약자를 위하는 사람들의 승리하도록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약자를 위하는 척하는 사람들은 망했으면 좋겠습니다. 반대로 작지만 다양한 공동체를 살리고, 약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려는 사람들이 당선되면 좋겠습니다.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 약자에 대한 관심의 연장으로서 지방선거를 보자 
• 시사저널 - (기사하단 표) 6.4 지방선거 서울지역 기초단체장 출마예상자
은평시민신문 - 은평지역 진보정당 6.4 지방선거 동향은?

 

지방선거(2) 부정한 일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지난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앞으로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부정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좋겠습니다. 
• 미디어오늘 - 경찰 "'개표부정' 부정선거 백서 출판 무혐의" 검찰 송치

 

18대 대통령 선거, 진실을 밝히자
아울러 국가정보원 등 국가 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구심이 여전히 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합당한 벌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 동네교회청년 - 18대 대선 부정선거 관련 종교인 시국선언문 모음


이 시대, 청년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이 시대,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참 힘듭니다. 그것을 달래기 위해서 허무한 쾌락을 좇기도 합니다. 청년들이 이런 상황에 굴복하고 허무한 일로 소일하지 않기를, 오히려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생겨 나기를 바랍니다.


*  *  *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마태복음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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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있다고 해서 동네가 행복할 일이 별로 없는 요상한 세상 속에서, 사심 없이 동네를 섬겨보겠다며 동네교회청년을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습니다. 그간의 활동을 정리해보고 앞 일을 모색할 때입니다.

때마침 선교학을 공부하시는 손승진 선생께서 출국하시는 것을 기념하여 "예수님의 선교와 동네 선교"라는 조촐한 강연을 열었습니다. 늦더위를 무색케 할 무시무시한 공포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했던, 충격적 강연 내용을 정리하여 올립니다. (모두 다 적지는 못했어요 ㅋㅋㅋ)


*  *  *

예수님의 선교와 동네 선교
- 일시 : 2013년 8월 24일(토) 오후 6시 30분
- 장소 : 산타하우스

 
저에게 언제가는 부탁을 할 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할 줄은 몰랐습니다. (웃음)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웃음)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오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이름이 동네교회청년입니다. 동네, 교회, 청년, 이렇게 세 가지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네에서 살고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이 뭘 할 것인지 고민해보면, 어쩔 수 없이 제가 아는대로 말하면, '선교'입니다. 그래서 오늘 모임의 제목을 "예수님의 선교와 동네 선교"로 정했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선교'라고 제목을 정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선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결국 우리가 동네에서 벌이는 행동과 실천들이 무엇을 닮아야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선교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선교를 하셨나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공부만 했습니다. 실천에 있어서는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여러 번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거든요. 예수님은 가르침과 실천을 따로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정말 무엇을 하면 좋을까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선교를 하셨나
 
오늘날 우리 시대를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시대라고 합니다. 상투적인 말입니다. 1970년대, 1980년대 부터 나왔던 말이죠. 세계화, 지구촌화 등 표현만 달랐지 이미 나왔던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동네도 글로벌화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은평구를 보면 인종이 참 다양해졌다는 것입니다. 또 동네에 
다국적기업이 운영하는 커피숍이 생기고, 커다란 쇼핑몰이 들어왔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우리 동네가 변해가는 모습도 글로벌화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시대는 어땠을까요? 예수님의 시대도 비슷한 변화의 물결 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때는 로마의 시대였고, 또 국제화의 시대였습니다. 로마, 에베소 같은 도시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도 말할 것도 없고요. 

또 한 가지 재밌는 것이, 예수님의 시대는 재개발과 건축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헤롯 대왕이 아주 나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대왕'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가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아주 많이 남겼거든요. 많은 학자들이 목수였던 요셉이 대규모 건축이 이뤄지는 지역에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것으로 예상합니다. 


예수님이 살던 가버나움, 나사렛 위쪽에 세포리스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그 위쪽에 가이사랴 빌립보, 또 그 옆에는 가이사라는 해안도시도 아주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활동은 그런 큰 도시들을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신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활동은 변두리 지역에서, 그 중에서도 경제활동이 왕성한 곳이 아니라 소외된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활동은 아주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치유와 기적을 베푸신 것 같지만, 그를 통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세요. 기존 권력과 종교와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운동'입니다. 죄사함을 선포하고 돌이키는 삶에 초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위험'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활동은 가족들은 숨겨주고 싶고, 마을사람들은 내쫓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적인 영혼구원에만 치중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영혼구원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물론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구원에만 몰입함으로써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구원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국이 왔다, 회개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예를 들어 '삭개오'처럼 자신의 삶을 돌이키게 됩니다.

예수님의 선교에서 긍정적 부분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영혼구원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오늘날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우리의 성실한 자세입니다.


동네교회청년, 무엇을 해야할까

선교는 아주 구체적인 것입니다. 선교사가 선교를 간다고 하면 그 곳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이해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합니다. 말씀 선포는 당연히 하는 것이고요. 오늘날 많은 선교사들이 지탄을 받는 것은 언어도 안 되고, 문화적 이해도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말씀이 잘 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지역에 대해 더 고민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활동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네교회청년이라고 모여서 이 동네에서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복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동시에 여러분의 활동을 통해서 공공영역의 구원도 증진되어야 합니다. 동네선교에는 분명히 공공성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특히 가난과 권력의 불평등 문제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가난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가난이 잘 해결된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이후에, 원래대로라면 가난이 없어져야 합니다. 신명기 15장 4절에 보면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어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시는 박동현 선생이 성경에 나오는 가난에 대한 구절을 다 모아놓으셨습니다.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고 오히려 성실함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성실하게 살아서 가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왜 이렇게 복받는 부분에만 주목을 할까요? 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라는 하나님 음성을 듣지 않는 걸까요?

하나님이 가난을 많이 말씀하시는 이유는 가난에서 자유케 해주시는 것 뿐만 아니라, 가난으로부터 오는 자유를 맛보게 하시려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힘 없는 자와 함께 함으로써 주어지는 자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호혜적인 차원이 아니라, 함께 할 때에만 우리에게 오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만이 이 사회를 개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난의 문제는 선교에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농촌이나 어촌이나 연대하려는 시도들이 한국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게 '선교'라고 본 것이지요. 1928년에 예루살렘에서 세계 선교사 대회가 있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5명이 대표로 참가합니다.그 중 한명이 YMCA 총무였던 신흥우인데 그 때 한 발언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 이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회적 구속 사업에 있어서 사실 그대로 증인이 될 수 있다. … 만약 교회가 이에 실패하여 농민들이 그리스도에게 기대하는바 사회적 구원과 민족적 구원이 제거된다면 교회는 전적으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구원의 개념을 너무 위축되서 사용시켜 사용합니다. 그러나 별로 배움이 없었던 우리 선배들은 성경만 보고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구원과 민족적 구원이 제거된다면 그 책임을 교회가 물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선교

예수님의 선교사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상한 말을 하십니다. 바로 "네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인데요. 예전에 병자는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심과 동시에 늘 하신 말씀은 바로 '죄사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항상 문제가 됐습니다. 당시 죄사함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림으로써만 가능한 것이었죠. 그러나 병자들은 성전에 못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외면 받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너도 우리 공동체 일원이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돌 맞고 결국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거죠.

그게 선교사이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죄를 사해주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시는 것,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사함 있다고 하면 깨끗해졌으니 천국 가겠구나 하는데 그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지가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선포들이 완전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4장을 보면 40일 동안 시험 받으신 후에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신 예수님이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ㅁ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ㅁ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ㅁ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ㅁ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장 16~19절)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걸 할거다"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 묶인 사람들을 해방시키겠다, 눈 먼 사람들을 보게 하겠다,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겠다, 주의 은총의 해를 전파하겠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납니까? 성령이 내리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이신 예수님의 관심사는 가난한 사람, 묶인 사람, 눈 먼 사람, 억눌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해방을, 다시 보게 함을, 자유를, 주의 은총의 해를 전파하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은총의 해는 '주빌리(jubilee, 희년)'입니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처음 읽으신 말씀에서 예수님의 방향성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더 낮게! 더 약하게!
 


우리가 동네교회청년입니다. 동네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활동을 누가 좋아해야 할까요? 바로 이겁니다. 여러분이 만약 성령을 받고, 기름 부음을 받으면 이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이, 이 동네 묶인 사람들이, 이 동네의 눈 먼 사람들이, 이 동네의 억눌린 사람들이 좋아져야 합니다. 그런 꿈을 꾸셔야 합니다. 

이렇게 '선교'에 대해서 말하다보면 늘 질문을 받는 것이 있습니다. "선교가 뭐야? 그것과 개발이나 발전은 뭐가 달라?" 하는 것입니다. 선교가 정의하려는 시도는 최근입니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정도부터였죠. 사실 교회는 그런 질문 안 했습니다. 교회 활동이 곧 선교이니까요. 초대교회는 그 자체가 선교공동체였습니다. 이거는 구제, 이거는 선교, 이거는 전도, 이거는 봉사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회 전체가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는 활동의 총체가 바로 선교입니다.

다만 최근의 고민은,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며 일어난 반성인데요. 그 때의 선교는 교회의 선교였습니다. 교회의 확장, 성도의 증가, 식민지에서 어둔 사람들 깨쳐서 기독교화 하는 것이 선교라고 여겼습니다. 궁극적으로 서구화였죠. 즉 서구교회의 확장이 선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개념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입니다. 그렇다고 선교가 완성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원하는 것이죠. 교회 수를 늘리거나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 선교입니다.

물론 개발이나 발전, 이런 것도 참 중요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복지의 증진 같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면, 그건 맑스가 말한대로 종교가 인민의 아편인 것이죠. 개발이나 발전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개발이나 발전에 새롭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브라이언트 L. 마이어스가 쓴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선교>를 보면 성장 중심의 개발에서 사람 중심의 발전으로 옮겨와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해방시키는 선교

또 개발이나 발전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올바르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지요. 바로 해방신학자들입니다. 


20세기 중반에 전 세계적인 개발이 일어납니다. 우리나라도 박정희 정권 때 개발을 많이 했죠. 그 중심에는 미국에서 빌려준 차관(빚)이 있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소위 '진보를 위한 동맹(
Alliance for Progress)'을 주창하면서 자본과 교육이면 전 세계가 변화하고 진보할 수 있다는 확신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변화되거나 해방되지는 못했고 오히려 부패가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해방신학자들이 '해방'이라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스타보 쿠티에레즈가 <해방신학>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요. 그보다 먼저 라스 카사스라는 사람이 멕시코 선교사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인디오를 억압해서 플렌테이션 농업을 했는데요. 라스 카사스가 총독 앞에서 이런 설교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 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죄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죄 없는 인디언들에게 한 혹독한 행위들 때문에 여러분은 이 죄 가운데 살고 있고 또 이 죄 가운데서 죽게 될 것입니다.

무슨 권리로 여러분은 그들의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온 인디언들과 가증스런 전쟁을 했습니까? 어떻게 여러분은 여러분이 강요한 험한 노동에 시달리는 인디언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병을 치료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억압할 수 있습니까? 매일같이 금을 캐기 위해 혹사당하는 인디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여러분들이 바로 인디언들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은 누군가가 인디언들을 교화시켜, 세례를 주고 미사에 참석하고 성일과 주일을 지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디언들은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까? 인디언들이 이성과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단 말입니까? 여러분은 인디언들도 여러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은 아무런 느낌도 없습니까? 여러분은 깊고 냉담한 잠 속에 빠져 있습니까?

분명이 알아두시오. 여러분은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려던 터키인들과 무어인들(8세기에 스페인을 침략한 아라비아인)보다도 여러분은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해방되는 선교

저도 '해방'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생각나는 경험이 있습니다. 2007년에 온두라스에 견습선교를 다녀왔습니다. 빈민촌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었는데요. 미국에서 약품을 많이 지원받습니다. 그런데 다 못나눠주고 냉장고에 넣어 놓지요. 

하루는 학교에서 자고 있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왔습니다. 무슨 큰 일이 났나 했는데, 알고 보니 마을에 한 아기가 열이 안 떨어져서 온 동네 사람이 약 좀 달라고 온 것입니다. 뭐 이런 일 때문에 다들 왔나 했는데 거기 온 수많은 사람들이 진짜 걱정이 되서 온 것입니다. 함부로 약을 줄 수 없어서 결국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습니다. 병원비 계산도 내 돈으로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는데 아직도 마을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 때 드는 생각이 '여기 이 사람들 중에서 해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약을 쌓아놓고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돈이 많다고, 물자가 많다고 해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교사들이 배웁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본받아서 운동을 하게 되면, 여러분이 해방되실 겁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누군가 "궁극적 제자도는 죽음의 춤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타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지도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운동을 하고 실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네운동을 하면서 이 공동체에 중요한 것은, 실천공동체이자 신앙공동체이어야 합니다. 기도와 실천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도 세상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님,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서로 부끄럽지 않게 영성을 유지하는 것 중요합니다.



예수님처럼 할 수 있는가

결론을 내겠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 여덟 가지 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어렵고 핍박도 받을거니까 기뻐하라고 합니다. 마음을 비우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그랬습니다. 쫓기고, 핍박받고, 죽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라스 카사스의 설교를 듣고 단 한 명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왕에게 편지를 써서 라스 카사스의 소환과 처벌을 요구했지요. 그러나 오늘날 라스 카사스는 라틴아메리카 선교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라스 카사스에 의해 인디오 노예제가 폐지되거든요. 물론 그래서 흑인노예가 잡혀오게 되지만요. 그 지역에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싸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랬던 예수님의 선교는 동네선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고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해야 합니다. 이런 비전을 가지고 여러분이 동네선교를 꿈꾸셨으면 좋겠습니다. 동네교회청년이라 이름을 쓰고 계신데, 동네청년과도 다르고, 교회청년과도 달라야 합니다. 이 교회에, 이 지역에, 이 지역교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길 바랍니다.


두 가지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는 채수일이 쓴 
<신학의 공공성>입니다. 우리 사회가 많이 글로벌화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태원에 가면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라마단 기간이 되면 몇 만 명이 모입니다. 물론 이 분들이 선교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 분들과 어떻게 공존하고 대화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우리가 하려는 일은 어떻게 공공성을 띌 수 있을지 고민하기에 좋은 책입니다.

또 하나는 로버트 D. 퍼트넘,  데이비트 E. 캠벨이 <아메리칸 그레이스 - 종교는 어떻게 사회를 분열시키고 통합하는가>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종교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사하고 분석한 책입니다. 우리 동네를 위해 무엇을 조사하면 좋을지 고민하기에 좋은 책 같아 추천합니다.


 
*  *  *
 
마지막으로, 너무 나이브한 말인지 모르지만, 예수님 닮아서 사세요! 그런 열정을 가지고, 더 약한 사람들과 함께, 베푸는 삶이 아니라 나도 해방되는 삶으로, 그렇게 사시길 부탁합니다.


동네에 교회가 있다고 해서
동네가 행복할 일이 별로 없는 것을 요상히 여기며,

청년들이 먼저 나서
어떤 사심도 없이 동네를 섬겨보겠노라고
동네교회청년을 시작한 지도 어언 1년이 넘었사옵니다.

금번에 선교학을 공부하시는 손승진 씨가 출국하시는 것을 기념(?)하야
예수님의 선교와 동네 선교라는 조촐한 강연을 마련했사오니,

아무쪼록 바쁘신 와중에도 많이들 오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외다.


요즘 청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국정원의 정치개입 문제에 대한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지요. 저희 동네교회청년에서도 이 문제를 다뤄야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결국 회의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발표해보기로 했어요. 

여기 저기 알아보니, 여러 청년모임이 연합해서 입장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희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완성된 시국선언문을 나눠보고는 동네교회청년도 여러 청년모임들과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청년모임들은 2013년 6월 28일(금) 오전 11시,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어요. 동네교회청년도 기자회견에 참여하기 위해 예쁜 피켓을 만들었습니다.


완성!! 성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을 이렇게 책망하시거든요.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창세기 4장 10절)" 동네교회청년이 정부여당과 국정원에 묻고 싶은 것도 이것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나 더 만들었어요. 이것은 인쇄소에 가서 출력해서 만들었지요. 외국 영화를 보면 처음에 FBI WARNING이란 저작권 관련 경고 문구가 나오는데, 그것을 패러디 해서 N.I.S(국가정보원) WARNING으로 만들어 보았어요.


2013년 6월 28일(금)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어요. 저희들 앞에는 다른 모임에서 오셔서 시위를 하고 계셨습니다. 참 묘한 장면이지요.

 

저기 가운데 뒤에 저희가 만든 피켓이 보이시나요? 여러 단체에서 청년들이 오셔서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국선언을 발표했어요.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엄숙하기도 했답니다.


아래는 저희를 비롯해서 청년들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이예요. 


민주주의 파괴! 정치개입!
국정원 규탄 청년시국선언


댓글알바로 시작된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논란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국가의 공식정보기관이 수년째 색깔론을 동원한 여론조작으로 소위 남남갈등을 부추기며 진보세력을 탄압해왔고, 그것도 부족해 대선시기 집권여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더욱 문제는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구속처벌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받아야 할 국가정보원이 자숙과 반성은커녕 국가기밀정보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며 국민의 분노를 이념논쟁으로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보호해야 할 정보기관이 도리어 절차도 무시한 채 국가기밀정보를 누설하면서 초헌법적인 국기문란행위를 지속하는데 어느 누구도 이를 책임지거나 막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새누리당 박근혜후보 캠프가 지난 대선시기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입수하여 여론전에 이용하려 했다는 것까지 밝혀졌다. 지금까지 나온 사실만 보더라도 최소한 국가정보원과 집권여당, 그리고 경찰청과 법무부가 연루된 정치공작행위가 드러난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심각한 법죄행위이다.
 
검찰의 수사발표이후 시작된 대학가 시국선언이 교수와 종교계,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의 국정원 정치개입규탄 시국선언과 촛불집회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 결국 여론에 밀려 새누리당이 국정조사를 합의하였으나, 이것은 문제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번 국정조사는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 신속하게 합의하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의 전모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미 범죄행위가 드러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당장 구속하고 진상조사를 통해 드러난 관련 범죄행위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국가기관에 의한 이런 범죄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위한 법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미 본분을 잊어버린 국가정보원은 철저히 개혁하여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당사자이자 현정권의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대통령 역시 조사결과에 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며 마구잡이로 벌어지고 있는 국기문란사건에 대해 현 국정책임자로서 국민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해결되지 않고 진행되는 국정조사는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이번 국정원의 대선개입 공작은 정파와 이념의 문제가 아닌 민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 헌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 사태이다. 우리 청년들은 선배들의 피로 지켜온 민주주의가 국가권력에 의해 무참히 훼손되고, 구시대의 공작정치가 부활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종교와 정견, 지역을 뛰어넘어 각계각층 청년들의 의지를 모아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국정원 정치개입 및 경찰, 검찰의 은폐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는 국정조사를 즉각 실시하라! 
둘째,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당장 구속하라! 
셋째, 국정원 전면개혁 실시하고, 공작정치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넷째, 관련 당사자이자 최종책임자인 박근 혜대통령은 국민 앞에 공식 사과하라! 

만약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시간끌기나 다른 공작으로 물타기 하고 또다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려 한다면 이는 헌정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서 청년학생만이 아니라 전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을 다시 한번 경고한다. 


2013년 6월 28일 
청년시국회의 참가자 일동


강릉청년회, 겨례사랑청년회, 경기청년연대, 경남청년회, 고양평화청년회, 공주청년회,광주서구청년회,
광주전남청년연대, 광주푸른청년회, 구로청년회, 군포청년회, 기독교대한감리회청년회전국연합회,
기독교한국루터회청년연합회, 기독청년아카데미, 나라사랑청년회, 노원청년회, 대전청년회,
대한불교청년회, 대한예수교장로회청년회전국연합회, 더나은, 동네교회청년동작청년회,
목포사랑청년회, 부산청년회, 부천청년회, 분당청년회, 새길청년회, 새바람, 생명평화연대,
서울청년네트워크, 성남청년회, 소풍, 수원청년회, 순천청년연대, 시흥청년회, 안성사랑청년회,
안양일하는청년회, 여수사랑청년회, 오산청년회, 용인청년회, 우리동네청년회, 울산청년회, 원주청년회,
젊은벗, 천도교청년회, 청년건대, 청년나래, 청년이그나이트, 청주청년회, 터사랑청년회, 파도, 파주청년회,
평택청년연대(준), 하남청년회, 한국기독교장로회청년회전국연합회, 한국기독교청년연합회,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한국청년연대, 함께하는대구청년회, 화성청년회, 화순민주청년회, 활개,
희망청년회, e끌림, KYC(한국청년연합) 총 65개 단체(기자회견 시, 가나다순)



2013년 6월 28일(금)은 동네교회청년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날이었어요. 
동네교회청년은 앞으로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려고 해요. 그리고 청년답게 옳은 일을 위해 열심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십일조와 헌금을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답니다. 건강해지고, 사업도 성공하고, 자식들도 좋은 학교에 가고, 아무튼 뭐든 다 잘된답니다. 정말일까요?

그래서 동네교회청년이 조촐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 마당은 한국 개신교가 어떻게 해서 기복신앙의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살펴봅니다. 두 번째 마당은 성서가 말하는 진짜 복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세 번째 마당은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입니다.

궁금한 사람들은 여기 붙어라!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추가공지 : 6시부터 식사(도시락)가 제공되며 행사는 6시 30분부터 시작됩니다.




이 행사는 구걸.. 아..
 
'소셜펀딩'으로 진행됩니다 ^^

동네교회청년
동네에 살고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이
스스로 만든 모임입니다.
 
여러분의 후원은
이 모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후원해주신 내역과 그 사용처는
행사 후에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꿈과 희망을 응원해주세요.
 
고맙습니다.

농협 351-0477-0690-23 임정희 




열린지혜나눔 : 평범한 상상, 첫 번째 시간 <찬란한 한국교회의 검은 역사>입니다. 1주차 모임은 10월 18일(목) 오후 8시, 응암동에 있는 카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한 때 15kg 감량경험자로서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고하)지만 지금은 그냥 유부남 & 애 아버지인 한국교회사 학도 강사님과 10명의 청년들이 모여 뜻 깊은 첫 모임을 가졌는데요. 강사님은 강의 후에는 자신의 논문이 많이 남았다며 손수 나눠주기도 하셨습니다. 참여하신 분들도 조금 어렵긴 했지만 이야기처럼 술술 풀어줘서 재밌었다고 했습니다. 

자 그럼, 첫 시간에 나눴던 한국교회 이야기를 올립니다. 


열띤 분위기의 모습. 분필이 보이지 않는다.




1. 먼저,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일까요? E. 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J. 호이징가는 "역사란 하나의 문화가 자신들의 과거에 관해서 설명하는 하나의 정신형식이다."이라고 어려운 말을 썼죠.

한 마디로 말하자면 '
역사는 해석'입니다. 사건 그 자체로써의 역사, 가치가 진공상태인 역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역사는 생물'입니다. 어떻게 보느냐가 관건입니다. 제가 굳이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서술이나 평가가 다르다고 해서 제 말이 맞고 그 사람 말은 틀리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2. 오늘, '한국교회의 검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텍스트(Text)는 주어진 것입니다. 역사에서도 텍스트가 있죠. 기록이나 증언들, 때에 따라서는 몇 년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고 규명된 일들이 그렇습니다.


컨텍스트(Context)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보통 컨텍스트라고 하면 성경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이나 저자의 관점 등을들 수 있죠.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쓰여지던 당시의 배경이 다 다르지 않습니까. 이런 차이들에 따라 성경의 내용들도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컨텍스트는 바로 '내가 지금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예를 들어 이별을 경험했을 때 모든 이별노래가 다 내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성경도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는 어딜 펴도 다 나에게 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편안해지면 그냥 무덤덤해집니다. 

역사적 사실들도 내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때가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한참 부흥하고 성장하고 있을 때라면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통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죠. 하지만 반대로 요즘처럼 한국교회가 개똥밭을 구르고 있는 것 같을 때에는 우리가 문제가 무엇이고, 잘못이 무엇인지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찬란한 한국교회의 검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장로교의 분열

오늘은 장로교의 분열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장로교는 한반도에 미국 북장로교, 미국 남장로교, 캐나다 장로교, 호주 장로교 순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 '선교지 분할정책'을 시행합니다. 함경도는 캐나다 장로교, 평안도와 황해도 그리고 경상북도는 미국 북장로교, 전라도는 미국 남장로교, 경상남도는 호주 장로교가 맡아 집중적으로 선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쿠키뉴스


 

그런데 각 장로교마다 그 신학적 입장이 다 달랐습니다. 캐나다 장로교가 가장 진보적이었고 미국 북장로교, 미국 남장로교로 갈수록 보수적이었으며 호주 장로교가 가장 보수적이었습니다. 신학적 진보 보수라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여기서는 가장 기초적인 수준, 진보란 성서를 과학적 방법까지 동원하여 해석한다는 것이고, 보수는 성서를 문자주의에 입각해 해석한다는 것으로 이해하셔도 충분합니다.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별로 발달하지 않아 왕래가 잦지 않았기 때문에 각 장로교단의 신학적 차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그 지역을 맡고 있는 장로교의 선교에 따라, 자기들 방식으로 예수를 믿고 살면 되었던 것입니다. 

차종순 교수님의 해석을 따르면 해방 후 상당수의 북한교회가 공산당을 피해 남하하면서 남한교회가 급격히 팽창했고, 한국전쟁을 겪으면 동족 학살과 빈번한 이주 등의 이유로 계층과 공동체가 파괴되고 서로 뒤섞이게 됩니다. 이는 뜻하지 않은
문제로 연결되는데요. 서로의 '신앙'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이후 
1952년에 고신파 분열, 1953년에 기장파 분열, 그리고 1959년에 통합-합동 분열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요. 각 세력에서 짱 먹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죠. 즉 호주 장로교의 영향을 받은 
고신파의 한상동(1901-1976), 캐나다 장로교의 영향을 받은 기장의 김재준(1901-1987), 미국 북장로교의 영향을 받은 통합의 한경직(1902-2000), 미국 남장로교의 영향을 받은 합동의 박형룡(1897-1978)입니다. 특히 박형룡은 모든 분열에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신 분으로 가히 '분열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분이죠.

사진 왼쪽부터 한상동(고신), 김재준(기장), 한경직(통합), 박형룡(합동)

 


3-1. 고신파 분열 : 신앙의 순수성 문제?

흔히들 고신파 분열의 원인을 신사참배 문제와 그 후 처리과정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당시 신사참배 
안 한 사람이 없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이 겨우 50명 남짓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사람들 중에 특이한 것은 경남노회 출신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까 선교지 분할정책을 이야기 할 때 경남은 가장 보수적인 호주 장로교가 맡았다고 했습니다. 가장 보수적이기에 가장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신사참배 거부로 이어진 것이죠. 해방 후 그들이 출옥하면서 신사참배자들은 일정기간 회개하고, 신학교를 재건해야 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권징안(또는 재건안)을 발표합니다. (권징 
勸懲 : 교회의 윤리와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는 장로교회의 제도)

평양의 출옥성도들(1948)



이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성도들을 중심으로 해방 후 한국교회를 접수하겠다는 말이었고 당연히 신사참배를 감행했던 교회 내 기존 권력자들의 반발을 불러옵니다. 김관식, 홍택기 같은 이들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제에 강제에 굴복한 사람의 노고가 더 크다.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책벌은 하나님과의 직접관계에서 해결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나섭니다. 
결국 이를 둘러싼 경남노회 내부의 갈등, 즉 누가 더 순수한 신앙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 때문에 고신파가 분열한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내부사정은 좀 더 복잡합니다. 경남노회는 신사참배를 안 한 한상동 파와 신사참배에 앞장 선 김길창 파로 나뉩니다. 
김길창 이 사람 아주 대단한 사람인데요. 친일파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친일파여서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도 잡혀가는 사람입니다.

제 49회 경남노회에서 어떤 목사님이 일본 고유종교인 신토의 최고 신, '천조대신'만을 섬기기로 다짐하는 '미소기 바라이'를 7번이나 했다고 공개 참회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때 누군가 "그게 뭐야? 난 들어본 적도 없는데"라고 해서 돌아보니 바로 '미소기 바라이'를 받도록 주도한 김길창이었던 것이죠.

천조대신. 일본 신화에 나오는 태앙신으로 일본 고유종교인 신토의 최고 신이다.



그러자 한상동이 화가 나서 김길창에 대한 제명을 요구하고 김길창이 급히 자리를 뜨게 됩니다. 당시 노회장은 당사자가 없으므로 처리할 수 없다며 넘어가게 되죠. 이렇게 경남노회가 한상동 파와 김길창 파로 나뉘게 된 것이지요.

김길창 파의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그 문제는 양심적으로 이미 해결했다. 해방이 되었다고 죄로 운운하는 것은 비양심적이다"라는 것이죠. 이거 왠지... 홍대쪽에 로 생긴 교회의 이야기 듣는 것 같지 않으세요?
 
결국 한상동 파와 김길창 파가 모두 총회에 총대(총회대의원)을 파송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총대를 많이 보유한 파벌이 득세하기 마련이지요. 결국 경남지역에서는 비등한 세력이었지만 전국적으로는 소수였던 한상동 파가 밀리게 되죠. 한상동 파는 다시금 총회에 자신들의 파송한 총대를 인정해주길 요청했고, 총회는 고려신학교와의 관계를 끊을 것을 조건으로 내겁니다. 으잉? 고려신학교는 또 뭐냐고요?

고려신학교는 경남 출신의 출옥성도들이 1948년에 만든 신학교입니다. 1939년에 일제가 사립교육법을 개정하면서 신학교들이 문을 닫게 됩니다. 대신 1940년에 일제에 입 맛에 맡는 조선신학교가 개교하게 되지요. 이 학교의 교장이 바로 김재준입니다. 조선신학교는 해방 후인 1946년, 유일한 장로교 신학교로서 총회 인준을 받게 되지요.

그런데 경남 사람들이 중심이 된 출옥성도들 입장에서는 조선신학교 역시 신사참배 문제 등에서 현실 타협적으로 보였습니다.(라고 표면적으로는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1947년에 고려신학교를 만들게 되는겁니다. 여기 교장으로 온 이가 바로 박형룡이었는데 2년 만에 사임하게 됩니다. 박형룡은 미국에서 공부를 한 보수신학계의 거두였죠. 그는 고려신학교를 총회 인준을 받은 전국적인 신학교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상동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향력이 센 경남지역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결국 신학교 운영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고 박형룡이 나가게 된 것이지요.

만주 봉천신학교에 있던 박형룡을 교장으로 하여 1947년 부산에서 고려신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신학교가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신학교는 목회자 양성소입니다. 즉 신학교의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한국교회를 안정적으로 접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권력다툼인 것이지요. 어쨌든 총회에서는 고려신학교가 인정하지 않고 조선신학교만이 유일한 총회 직영 신학교로 인정했습니다. 결국 한상동 파가 이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단을 탈퇴하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고신파 분열은 마치 신앙의 순수성 문제로 나뉘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현재 권력인 총대 파송을 놓고 벌어진 한상동과 김길창의 대립, 미래 권력인 신학교 운영을 놓고 벌어진 한상동과 박형룡의 대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자면 고신파 분열은 '선교지 분할정책'이 낳은 분열의 첫 열매라고도 할 수 있지요!


3-2. 기장파 분열 : 신학의 방향성 문제?

김재준은 캐나다 장로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함경북도 출신입니다. 캐나다 장로교가 진보적이었던 탓에 김재준 역시 진보적인 신학자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그러자 보수의 거두였던 박형룡 입장에서는 김재준의 조선신학교가 마음에 들리 없었겠죠. 결국 박형룡은 남산에 따로 장로회신학교를 세우게 됩니다. 

사실 김재준과 한경직, 그리고 또 한 명의 진보신학자인 송창근(위 사진)은 항상 한 편이 되어 박형룡과 싸우던 사람들입니다. 이들 3인이 고등비평적 성경주석을 내자 박형룡이 이를 공격하고, 그러면 셋이서 힘을 합쳐 막고, 뭐 이러던 사이지요. 

그런데 김재준과 한경직은 종종 다투기도 하는 사이였답니다. 그래서 늘 송창근이 중재하는 역할을 했죠. 안타깝게도 송창근은 한국전쟁 초기에 납북되어 실종됩니다. 중재자가 사라진 것이죠. 만일 송창근이 오랫동안 김재준과 한경직의 곁에 있었다면 기장파 분열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재준과 한경직이 결정적으로 결별하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지금의 영락교회 자리가 원래는 조선신학교 자리였다고 합니다. 남겨진 일제의 부동산을 나눌 때 김재준과 한경직이 미군정에 가서 조선신학교 자리로 받았다고 하지요. 하지만 나중에 한경직이 따로 가서 영락교회 자리로 바꿨다고 하는군요. 김재준과 한경직은 이 문제로 완전히 결별하게 됩니다. 영락교회 측에서 돈 몇 10억을 줄테니 그만 싸우자고 제안했고, 조선신학교 측 인사들이 백억을 주고도 못 살 땅이라며 펄펄뛰며 반대했지만 김재준은 목사끼리 싸우는 것이 덕이 안 된다며 수유리로 옮겨가게 됩니다.

김재준과 한경직이 결별하자 박형룡이 김재준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총회에서 조선신학교를 나온 목회자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조선신학교의 총회 인가를 취소하고 김재준을 제명합니다. 이에 경기노회와 조선신학교를 지지하는 각 지방의 세력, 스코틀랜드 선교부가 반발하자 대대적인 축출이 벌어집니다. 결국 김재준 파가 나가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를 설립하게 되는거죠. 이 과정에서 한경직은 미온적 태도를 취하며 분열이 진행되는 상황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사실 별로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대구서문교회에서 열린 제38회 총회(1953)에서 김재준을 파면하고 조선신학교 졸업생에게 교역자 자격을 주지 않기로 하다.



결과적으로 기장파의 분열은 진보냐 보수냐 하는 신학의 방향성 문제로 나뉘게 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부동산 문제로 인한 김재준과 한경직의 대립, 신학교 운영 문제롤 놓고 벌어진 김재준과 박형룡의 대립, 여기에 고신파의 경우 경남노회의 사례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킨 형국으로, 이번에는 경기노회와 타 지역노회, 특히 이북 노회들의 총회내 주도권 대립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3. 통합 합동 분열 : WCC와의 관계 문제?
 

WCC의 로고. 오이쿠메네는 집, 가정, 세상이란 뜻으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세상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통합과 합동의 분열입니다. 흔히들 세계교회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문제로 인해 분열하였다고 하지요. 

합동에서 WCC를 반대하며 문제 삼은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용공(공산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이거나 그 정책에 동조하는 일)이고, 둘째는 자유주의 또는 종교다원주의라는 것입니다.

합동에서 WCC를 용공이라는 것은 러시아정교회를 비롯한 냉전시대의 동구권 교회들이 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 WCC는 세계 최초로 이것은 '북침'이라고 규정하고 북한은 빨리 38선 이북으로 물러가라고 요구하지요. 유엔이 남한을 지지하고 참전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중공이 북한 편을 들고참전하자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중국교회가 WCC를 탈퇴하기도 하지요. 
 
자유주의 또는 종교다원주의도 그렇습니다. WCC 안에 여러 사람들이 있는 게 맞긴 맞습니다. WCC의 영향아래 새로운 신학들이 발흥한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태동한 진보적 신학인 민중신학도 WCC의 지원을 받아 생긴 것이지요.

여기서 잠깐 유럽의 신학적 사조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의 신학적 사조는 원래 정통주의였습니다. 한국교회의 대다수가 받들어 모시는 보수적 사조였죠.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정통주의를 깨기 시작한 것이죠. 정통주의는 마땅한 반박을 하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 신정통주의입니다. 정통주의를 계승하되 맹목적이 아니라 말이 되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20세기의 대표적 신학자인 칼 바르트와 폴 틸리히 모두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입니다.

정통주의  ->  자유주의  ->  신정통주의(칼 바르트, 폴 틸리히) 




그런데 한국에서는 바르트와 틸리히를 자유주의자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박형룡이 말하면 그것이 바로 법이었습니다. 박형룡이라는 보수신학계의 거두가 한참 활동할 때에는 그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그러한 오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1950-60년대에 박형룡이 바르트는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한 것이 오늘날도 이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아무튼 WCC
가 자유주의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WCC는 자유주의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신정통주의도 들어와 있고, 자유주의를 전근대적 사고로 비판하는 포스트 모던주의도 들어와 있습니다. 단순히 WCC는 자유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통합은 분열의 이유로 '삼천만환 유용사건'을 꼽습니다. 당시 신학교가 잠시 대구에 있었는데 박형룡이 서울에 자리를 잡고 싶어 한 것이죠. 그래서 브로커 박호근을 만나서 정부에 이야기를 잘해달라며 건넨 로비 자금이 삼천만환입니다. 그런데 이게 딱 걸린 것입니다. 

박형룡 파는 처음에 우리 박형룡 박사는 재물에는 관심도 없는 분이며, 오로지 재무담당자가 나쁜 놈이라며 꼬리자르기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한경직 파가 절호의 찬스를 놓칠리 없죠. 결국 박형룡이 떠나게 되는데 보수주의자들이 박형룡의 일선 후퇴는 보수주의 신학의 몰락이라며 반발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또 총대문제가 불거집니다. 기장파 분열 때와 마찬가지로 쟁투장은 경기노회인데요. 한경직 파가 1/3정도, 박형룡 파가 2/3정도 당선이 되었는데, 한경직 파가 재검표를 요구하니 대세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한경직 파가 기존보다 좀 더 당선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연동교회에서 열린 통합총회(1960)와 승동교회에서 열린 합동총회(1960)



결국 한경직 파가 임시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박형룡 파가 받아줄 리 없죠. 결국 한경직 파만 모여 열린 임시노회에서 재투표를 통해 한경직 파가 다수파로 당선이 됩니다. 당연히 박형룡 파가 이 결과를 인정할 리 없지요.  

결국 이 과정의 정점인 총회에서 양 측의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 경찰이 출동했고, 시기적으로는 좀 차이가 있지만 지방에서는 박형룡 파 1명이 구타로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그 분은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순교자로서 이야기 되기도 하는데요. '순교'란 복음에 전하려다 복음에 적대하는 사람들의 고의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때에만 해당되는 말이지요. 결국은 상대파를 악마로 규정했다고 밖에 볼 수 없죠. 

표면적으로 박형룡 파는 WCC를 탈퇴하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남장로회 선교부가 중재에 나섰지만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죠. 이에 한경직 파가 WCC에서는 탈퇴하겠지만 모든 연합사업을 중지할 수는 없다며 1959년 탈퇴하여 통합교단을 설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박형룡 파는 모든 연합사업을 멈추기 원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연합사업이 성서와 찬송가 사업인데 이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수익사업입니다. 과연 정말 이 사업을 그만둘 의지가 있었을까요? 

결국 총대 파송과 신학교 운영을 둘러싼 한경직과 박형룡의 대립 속에서 자기 파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갈라설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통합측이 WCC를 탈퇴했음에도 분열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WCC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통합이 WCC에 다시 가입한 것은 10년이 지난 1969년의 일입니다.


4. 분열되지 않는 감리교의 변선환, 홍정수 종교재판

장로교 이야기만 하면 섭섭하니 감리교 이야기를 해볼까요? 감리교는 분열이 잘 안 됩니다. 해방 후 복흥파다, 재건파다, 나뉘어 대립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합칩니다. 왜 그럴까요? 감리교는 포용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고, 좀 더 신학적 폭이 넓고 자유로워서 그럴까요? 에이, 그건 아닙니다.

여기서 장로교와 감리교의 조직의 차이를 봐야 합니다. 장로교는 교회의 재산이 각 교회의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분열해서 나가도 자기들의 것입니다. 그러나 감리교는 감독제도를 채택하고 있고 재산은 중앙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분열해 나가면 교회를 반납하고 나가야 하는 것이죠. 최근까지 감리교는 감독회장도 뽑지 못한 채 분열을 겪고 있지만 둘로 깨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곧 감리교가 갖고 있는 파주 쪽에 있는 어마어마한 부동산에 대한 그린벨트가 폴린다는 풍문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누가 뛰쳐나가겠어요?

대신 감리교 안에서는 신학자에 대한 축출이 이뤄집니다. 변선환과 홍정수가 바로 그들인데요. 변선환은 종교다원주의자라는 이유로, 홍정수는 포스트모던 신학을 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을 받고 감리교에서 출교됩니다.

감리교에서 출교당한 변선환(왼쪽)과 홍정수(오른쪽)



당시 재판 동영상을 보면 진짜 코미디가 따로 없는데요. 일단 
재판이 열린 장소가 변선환과 홍정수를 고소한 김홍도가 시무하는 금란교회였습니다. 당시 감리교신학교 대학생들이 와서 데모를 하고 이를 막기 위해 김홍도의 동생인 용인대 체대 출신 김국도가 후배들을 데리고 와서 신학생들의 진입을 막고 패대기를 쳤다고 하죠. 변선환은 법정에 책을 산떠미만큼 갖고 와서 일일이 증거로 제출하는데 재판장이 지겨워서 죽으려고 하고요.


변선환이 자신의 출교 및 영구제명에 대해 변호하는 동영상


또 다른 '피고' 
홍정수는 재판장에서 "모두 다 날조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날조라고 할 만 한 정황이 많습니다. 홍정수가 하지도 않는 말을 공격의 빌미로 삼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어쨌든 핵심은 홍정수가 포스트모던 신학을 했다는 것인데, 이게 왜 문제냐고 하면 자유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신학은 자유주의와 가장 반대되는 방식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과학적 틀이라는 한 가지 방법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정통주의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포스트모던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포스트모던 신학을 자유주의라고 공격하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것이죠.

결국 저 유명한 감리교의 '삼도', 김선도(광림교회), 김홍도(금란교회), 김국도(할렐루야교회) 삼 형제는 부흥사 집단인데, 이들의 카리스마로 개교회가 총회를 능가하는 힘을 가질 정도로 성장했고, 권력유지를 위해 필연적으로 신학교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교수들, 즉 변선환과 홍정수를 축출하고 그 배경세력인 모 감독 공격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뭐 풍문에 따르면 장기천 감독이 타겟이었다고는 하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군요.


5. 다음 시간에는

오늘은 분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2주차에는 친일부역에 대해서, 3주차에는 독재와의 야합과 빨갱이 논쟁에 대해서 다룰 것입니다. 마지막 4주차에는 각 대안으로서 해방 이후 한국교회의 청년운동의 모습에 대해 살펴볼 생각입니다.


*** 강사님이 추천하는 좋은 책 ***
 

식민권력과 종교
김승태 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2.08.10, 페이지 523, 정가 22,000원


한국장로교회사
(형성과 분열 과정, 화해와 일치의 모색)
양낙흥 저 / 생명의말씀사
2008.04.05 / 
페이지 743 / 정가 34,000원
고신교단에서 폐기처분을 명령한 바로 그 책! 
 


동네 교회 청년 첫번째 공작으로
 한국교회사 강의, "찬란한 한국교회의 검은 역사"를 준비했사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10월 18일~11월 8일_매주 목요일 오후 7시
* 장소 : 신사종합사회복지관(6호선 응암역 1번 출구) 2층 상담실
            
*시간과 장소가 변경되었으니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 회비 : 10,000원_희망자에게 전액비밀장학금 지급
* 문의 : ncyemail@hanmail.net 동네 교회 청년
 


이야기.

1주 (10/18) Text와 Context, 그리고 다름의 거세로서의 교회사
2주 (10/25) 일제하 한국교회의 사회참여, 여전히 진행 중인 친일의 문제
3주 (11/01) 해방 후 교회와 국가관계, 반공 vs 반공의 싸움에서 번지는 빨갱이 논쟁
4주 (11/08) 기독청년운동을 중심으로 보는 군사독재기 한국기독교 사회운동사


이야기꾼. 손승호
- 前 두 달 만에 15kg 감량 경험자
- 現 그냥 유부남 & 애 아버지
- 취미는 사랑이라고 주장, 어쨌든 사람은 좋음
- 원래 3만원 이하로는 강의 안 하지만 이번만 재.능.기.부.
- 재수강으로 들어간 한국교회사 강의가 재미있어서 어쩌다 보니 박사과정을 하고 있음
- 세상 일이란 참!
 

평상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밖에다 내어 놓고
누구나 앉거나 드러누워 쉴 수 있도록 만든
나무로 된 침상입니다. 

"평범한 상상"은

평상처럼 누구나 와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들의 "평범한 상상"들... 준비중입니다 ^^


안녕하세요? 동네교회청년입니다.

요즘 교회는 ‘동네와는 완전히 별개의 집단’이라거나, 또는 ‘교회답지 못하다’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실망한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데 특히 청년층의 이탈이 눈에 띕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어찌되었든 교회를 둘러싼 비난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러한 비난을 교회가 어떻게 극복할 지에 대해 몇 몇 청년들이 모여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를 향한 비난 안에 답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는 동네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교회의 본질에 맞게 살아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청년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1. ‘동네’, ‘교회’, ‘청년’을 주제로 공부하고자 합니다.
모임을 시작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더 공부가 필요합니다. 신앙서적은 물론이요, ‘마을 만들기’나 ‘공동체’에 관한 책,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인문사회과학 도서 등을 차례로 읽고 나눌 것입니다.
 
2. 공부를 통해 깨달은 바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공부를 통해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대중강연이나 이야기마당을 열거나, 동네에 있는 시설을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하고, 지역모임이나 여러 청년모임과 만나 교류하는 등의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3. ‘공부의 깨달음’과 ‘실천의 결과’를 온/오프라인으로 나누려고 합니다.
공부와 나눔, 그리고 실천을 통해 깨닫게 된 마음과 이야기를 소식지, 블로그, SNS 등을 통해 주위의 청년들, 동네 주민들과 나눌 생각입니다. 아울러 동네의 여러 소식도 담고, 선배들을 찾아가 그네들의 옛날과 지금 이야기도 담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모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당초 취지와 달리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약속을 통해 스스로를 늘 돌아볼 것입니다.

첫째, 파벌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든다.
사람들의 모임은 필연적으로 폐쇄적이고 이기적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늘 이 문장을 되새기며 공동체를 지향하고 공동체를 위하는 모임이 되고자 합니다.
 
둘째, 비난하지 않고 시비를 가린다.
이 모임은 어떤 무엇을 비난하려는 모임이 아닙니다. 또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려는 모임도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무엇이 좀 더 옳은지 함께 고민해보고 보다 나은 결론을 함께 찾아가는데 함께 노력하는 모임이 되고자 합니다.  

셋째,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고 실천한다.
때때로 모여 먹고 마시고 떠들고 끝나면 우리의 신앙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함께 모여 공부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얻은 결론에 따라 반드시 작은 실천이라도 이루도록 노력하는 모임이 되고자 합니다.

넷째, 재미있을 때까지만 한다.
이 모임을 시작하고 진행하는 것이 ‘일’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누군가로부터 강요받아서도 안 되고 누군가를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신나고 재미있을 때까지만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다섯째,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자유롭고 열려있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고, 스스로 맡은 소임이 끝났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고맙고 축복하는 마음으로 보내주고자 합니다.



동네교회청년을 시작하며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여전히 사람과 재정이 모이는 탁월한 조직이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감사한 자원으로써, 이것을 사심 없이 동네를 위한 사용한다면 크게 환영받을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실천임과 동시에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복음전파가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주도적으로, 기쁘게 진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청년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뜻을 담아 동네교회청년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모임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소금과 빛이 되어서 착한 행실로 당신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하나님의 초청과 명령에 부응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많은 지지와 참여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ncyor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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